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굴 제국 (문단 편집) === 복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costume.jpg|height=3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costume1.jpg|height=3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Thomas_Hickey_(1741-1824)_-_Prince_Azim-ud-Daula_(17751819),_Nawab_of_the_Carnatic_and_His_Son_Azam_Jah_(18001874)_-_1180953_-_National_Trust.jpg|height=35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ughalcostume2.jpg|height=350]]}}} || || '''{{{#FFF 마지막 황제 [[바하두르 샤 2세|{{{#fff 바하두르 샤 2세}}}]]}}}''' || '''{{{#FFF 황궁 여인의 복식}}}''' || '''{{{#FFF 겉옷 '자마'를 걸친 부자의 모습[* 카르나타카의 나와브 '아짐 웃다울라'와 그의 아들 아잠 샤의 모습이다. 1800년대 초반에 영국인 화가 토마스 히키(Thomas Hickey, 1741-1824)가 그린 초상화.]}}}''' || '''{{{#FFF 후궁의 초상화}}}''' || 무굴 제국의 사람들은 당대 인도가 세계적인 옷감의 생산지였던만큼 기본적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다녔다. 무슬린, 실크, 벨벳 등으로 옷을 만들었으며 곤충이나 [[철(원소)|철]], [[안티모니]] 등에서 추출해낸 염료를 이용하여 아름다운 색을 넣은 다음 점무늬, 줄무늬, 전통문양 등으로 다양하게 장식을 넣어 꾸미기도 했다. 남성들은 손목에 띠가 있어 손목을 조이는 형태의 의복인 '파트카'를 입은 후 그 위에 겉옷인 '자마'를 걸치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 '자마()'는 무굴 제국 시대 남성들의 보편적인 겉옷이었다. 소매와 몸통은 타이트하지만 무릎 쪽으로 내려갈수록 스커트처럼 품이 넓어지며 벌어지는게 특징. 힌두교도와 무슬림 모두 자마를 즐겨 입었지만 자마를 고정하는 끈을 묶을 때 힌두교도는 몸의 왼쪽에, 무슬림은 오른쪽에 묶는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훗날 [[인도 제국]] 시기 자마는 점점 길이가 짧아지며 나중에는 거의 [[조끼]] 수준으로 모습이 변한다. ] 자마 아래에는 '파이자마'라고 하는 바지를 입었으며[* 영단어 'pajama'가 바로 이 파이자마에서 유래했다.] 머리에 [[터번]]을 둘러 마무리했다.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사리(인도)|사리]]를 입고 다녔으며, 그 외에 손목과 허리가 연결되어 있는 '샬와르', 좁은 바지인 '츄리다스', 후드가 달린 외출복인 '가라라' 등을 입고 다니며 보석이나 장신구로 호화롭게 치장하고 다녔다. 당시 여성들의 복식 유행은 황실에서 주도했다. 황궁의 여인들은 무려 16단계에 걸치는 미용 관리를 받았으며 '카잘'이라고 부르는 석탄으로 만든 [[마스카라]]를 칠하고 치아를 하얗게 표백하고 다녔다. 코에는 '나스'라고 부르는 피어싱을 달아 그 위에 다이아몬드 등 값비싼 보석들을 달았고[* 보통 이 피어싱과 보석은 남편이 선물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여인의 피어싱을 보면 남편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베틀후추를 갈아 입술에 발라서 입술을 붉게 만들뿐만 아니라 입에서 향긋한 향이 나도록 했다. 공주들은 매일 공들여 그린 붉은색 [[헤나]]로 손과 발을 물들이고 다녔다.[* 참고로 이 헤나는 당시 값이 어마어마하게 비쌌고, 웬만한 황실 여성이 아니면 꿈도 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갔다.] 한편 무굴 제국 시기에는 보석 세공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상류층의 여성들이 보석들을 이용해서 몸을 꾸미고 다녔다. 당시 부유한 여성에게는 최소 8종류의 장신구가 있는 것이 기본이었다고 할 정도로 사치를 즐겼다. 인기있던 장신구들 중에는 주로 팔꿈치 위쪽까지 올려서 차는 팔찌, [[진주]]로 만들어진 3겹의 목걸이, [[반지]], 그리고 조그만 태양이나 별, 달의 형상으로 세공하여 이마 앞쪽으로 내려뜨려 달고 다니게 만든 보석류 등이 있었다. 터번에 화려한 보석을 장식하는 것은 오직 황제의 특권이었다. 때문에 황제들마다 취향에 따라 터번을 각기 다르게 장식했는데, [[악바르 대제]]의 경우 페르시아식으로 터번의 이마쪽 부분에 큰 깃털 하나와 보석류들을 다는 게 취향이었고, [[자한기르]] 황제는 거대한 깃털과 함께 진주를 다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검소함을 지향했던 [[아우랑제브]]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형태의 터번에 장신구 하나만 얹는 정도에 만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 남성들도 터번을 장식하고 다녔고 '지그하'나 '사르파티', '투라'나 '칼랑기' 등 다양한 장식물들을 이용해서 터번들을 각기 취향에 맞게 꾸몄다. 여성들도 머리 장식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마찬가지라서 머리에 얇은 실크 천을 두르고 그 천을 화려한 자수로 장식한다든가 [[루비]]나 [[에메랄드]], 황금 등으로 돋보이게 하는 등 머리장식에 엄청나게 신경을 많이 쏟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목걸이나 [[귀걸이]]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많이 하고 다녔고, 다만 코걸이만은 오직 여성만이 하고 다녔다.[* 인도의 코걸이 장식은 16세기 말 무굴 제국의 상류층 계급에서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무굴 제국 초기 궁정 여성들은 이슬람 율법으로 인하여 궁궐에 갇혀 살았다. 이때문에 사회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유행을 탈 여유가 없었기에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페르시아 복식을 하고 다녔다. 그러나 점차 무굴 제국이 확장하면서 라지푸트나 지역 등 인도의 타 지역들과도 교류가 잦아지고 여성들의 사회 출입이 어느 정도 용인되면서 이들의 옷차림 역시 바뀌기 시작했다. [[바부르]]와 [[후마윤]]의 궁정에 살던 여성들은 통이 넓은 바지에 목 부분이 조이거나 V자 모양의 헐겁고 얇은 상의를 입고 다녔고, 기다란 소매를 끌고 다니기도 했다. 악바르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힌두교]]식 의상들이 전래되면서 무슬림 여성이나 힌두교 여성이나 너나할것 없이 비슷한 옷을 입고 다녔다. 이 시기에는 주로 얇은 옷들을 겹겹이 둘렀으며 상체에 딱 붙는 옷들을 입었고 한때 남성들만 입던 상의인 페샤와즈를 여성들도 입기 시작했다. 옷들은 대부분 무릎이나 그 아래까지 내려왔고, 발목 부분은 타이트하게 조여 입었으며 목라인은 V자 모양이었다. 다만 무슬림 여성들은 바지를, 힌두교 여성들은 치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둘다 진주나 황금 등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다녔다. 게다가 옷감은 오직 최고급 비단과 벨벳만을 사용했기에, 거의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했다고 하며 황금으로 만들 실로 자수를 넣어 다녔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